국제화 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한 가지 이상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중언어 화자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태어나면서부터 또는 출생 이후 어느 시점에서부터 한국어가 아닌 제2 언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아동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출산율 저하로 아동 인구 비율이 해마다 두드러지게 감소하고 있으나, 다문화가족 자녀 인구 비율은 지난 10년간 약 5배 가까이 증가하면서(Ministry of the Interior and Safety, 2022),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령인구 비율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Ministry of Education, 2019). 이처럼 다문화 아동 및 청소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의 언어발달 특성에 대한 이해, 적절한 언어평가 및 치료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중언어 아동의 다양한 언어환경과 문화적 차이로 인해 임상 현장에서 평가 및 치료 진행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Thordardottir, 2010; Yang & Hwang, 2022). 이중언어 아동의 경우, 의사소통 상황에 따라 두 언어 사용률이 다르고, 두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에 차이가 있으며, 분산된 어휘 지식(distributed vocabulary)을 보유하고 있다는 특성이 있다(Hammer et al., 2008). 단일언어 아동과는 다른 언어발달 및 학습의 특성으로 인해 이중언어 아동들의 발화를 단일언어 아동의 평가 기준에 따라 평가할 시, 말더듬으로 과잉 진단될 위험성이 있다(Carias & Ingram, 2006; Fiestas et al., 2005). 그러나 현재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 특성과 진단 기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양적으로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아직 미비한 상태이다. 따라서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이중언어 아동이 보이는 비유창성 문제를 언어적 차이를 고려하여 정확하게 진단하고, 체계적인 비유창성 중재를 제공하는 데 필수적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들이 보이는 언어학적 비유창성 산출과 오류의 특성을 분석함으로써,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 진단 및 평가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언어학적 비유창성(linguistic disfluency)은 정상적 비유창성을 의미하며(Manning, 2010), Loban (1976)은 이러한 언어학적 오류로 나타나는 비유창성을 마치 말이 길을 잃고 엉키어 주저하는 현상과 같다는 의미로 maze (미로)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Levelt (1989)는 발화 산출의 과정을 다음 3단계로 설명하였다. 첫째, 인지적 과정을 의사소통 의도를 가지고 발화하기 위한 정보를 선택하는 개념화(conceptualization) 단계, 둘째, 메시지를 표현하고자 할 때 필요한 어휘, 구문 등을 선택하여 적절한 언어 형식을 구성하는 형성화(formulation) 단계, 셋째, 조음기관을 활용하여 직접적인 언어로 산출하는 조음(articulation) 단계로 설명하였다. 각 단계마다 화자는 자신의 발화에 대한 지속적인 내적, 외적 모니터링이 이루어지는데 해당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하면 발화 산출을 중단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발화를 수정하여 재산출하는 과정을 거치고, 이는 언어 산출에 방해요소로 작용하여 결국 비유창함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보았다. 발화 수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비유창성의 유형은 ‘음’, ‘어’, ‘그’와 같은 간투사(filled pause)의 삽입, 음소, 음절, 단어, 구 등의 반복(repetition), 수초 이상의 휴지(pause) 및 앞서 산출한 발화의 어휘, 음운, 구문의 수정(revision)이 있다(Bedore, Fiestas, Pena, & Nagy, 2006). 이러한 비유창성 유형은 언어를 계획하고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이 구어에 반영된 것으로서(Manning & Shirkey, 1981; Navarro-Ruiz & Rallo-Fabra, 2001) 언어 산출 기저 내 인지처리과정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간투사는 언어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기억 및 인출을 돕기 위해 외현적으로 시간을 벌기 위해 나타나는 유형으로 해석된다(Clark & Tree, 2002; Thordardottir & Weismer, 2002). 반복은 음운, 의미, 구문 등의 계획 및 인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호함(ambiguity)을 의미하며 자신의 발화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Fraundorf, Benjamin, & Watson, 2013; Thordardottir & Weismer, 2002). 휴지는 전달하고자 하는 언어의 구성 및 어휘 인출 계획에 어려움이 있을 때 발현된다고 보았다(Fraundorf et al., 2013).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이중언어 아동은 단일언어 아동에 비해 더 높은 비율의 언어학적 비유창성을 보인다(Bedore et al., 2006; Brundage & Rowe, 2018; Byrd, Bedore, & Ramos, 2015; Eggers, Van Eerdenbrugh, & Byrd, 2020; Lofranco, Pena, & Bedore, 2006; Rojas & Irani, 2020).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 연구에 따르면(Fiestas et al., 2005), 단일언어 아동에 비해 이중언어 아동이 더 높은 빈도의 반복, 어휘/구문 수정을 보였다. 또한 6-10세의 Yiddish-Dutch 이중언어 아동 59명의 자발화에서 나타난 비유창성 특성을 분석한 결과(Eggers et al., 2020),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 중에서도 1음절 반복이 이중언어 아동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이중언어 아동의 고유한 언어처리 특성, 특히 이들의 언어적 불확실성(linguistic uncertainty)을 반영하는 결과라고 할 수 있다. Thordardottir와 Weismer (2002)는 이중언어 아동이 하나의 언어로 말을 계획하고, 단어를 인출하는 과정에서 시간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언어학적 비유창성이 나타난다고 하였다. 이중언어 아동이 단일언어 아동보다 메타언어 능력이 더 높기 때문에, 자신이 계획한 말을 모니터링하고 수정하는 빈도가 높게 나타나고, 이에 따라 언어학적 비유창성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Gamez, Lesaux, & Rizzo, 2016). 이중언어 아동의 높은 언어학적 비유창성 빈도와 유형의 차이를 보고한 이러한 선행연구들의 결과는 이중언어 아동의 언어처리 특성이 단일언어 아동과는 다름을 시사한다.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 평가를 위해서는 말더듬이 없는 이중언어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비유창성 빈도와 유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말더듬이 없는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 18명을 대상으로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를 실시한 결과(Byrd, Bedore, & Ramos, 2015), 비정상적 비유창성의 평균 빈도의 범위가 3-22%로 나타났으며, 이는 단일언어 아동의 말더듬의 기준이 되는 100단어당 3%를 초과하는 수치였다.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유창성장애 진단 정확도를 살펴본 Byrd, Hoffman과 Gunderson (2015)의 연구에 의하면, 14명의 언어치료사 중 12명이 말더듬이 없는 정상 발달의 이중언어 아동을 말더듬으로 평가하였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이중언어 아동의 발화에서 나타난 비유창성만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숙련된 언어치료사일지라도 잘못 진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에 관한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며, 대부분의 선행연구는 영어권 위주의 연구로 한국어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제한점이 있다. 또한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 평가를 위해서는 이들의 비유창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요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는 언어의 능숙도(proficiency)이다. 언어의 능숙도에 따라 비유창성의 빈도에 유의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결과와(Ardila, Ramos, & Barrocas, 2011; Chakraborty et al., 2017; Eggers et al., 2020; Jankelowitz & Bortz, 1996; Lee, Sim, & Shin, 2007; Lim, Lincoln, Chan, & Onslow, 2008), 능숙도에 따른 비유창성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다는(Byrd et al., 2015; Jayaram, 1983) 결과 등 연구마다 상이한 결과를 보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언어의 능숙도에 따른 언어학적 비유창성의 차이를 살펴본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Grosjean (1998)은 이중언어 화자의 두 언어 능숙도와 사용 정도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비유창성 평가를 할 경우, 각 언어의 능숙도뿐만 아니라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은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Ardila et al., 2011; Jankelowitz & Bortz, 1996; Lim et al., 2008; Nwokah, 1988).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이야기 산출 과제를 실시하여 언어학적 비유창성을 분석한 Bedore 등(2006)의 연구에 따르면, 스페인어로 산출한 발화에서 나타난 구문 수정과 다음절 반복의 빈도가 영어로 산출한 발화에서 나타난 것보다 유의하게 높았다. 이러한 결과는 영어에 비해 스페인어의 문장 어순이 더 자유롭고, 성별 및 시제의 변형이 더 다양하게 나타나는 구문적 차이로 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스페인어의 구문 구조의 복잡성으로 인해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이 영어보다 스페인어에서 자신의 발화를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더 많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는 이중언어 사용자가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에 따라 언어학적 비유창성의 빈도에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어와 영어는 언어 유형과 특성에 극단적 차이가 있는 언어로, 구문론적 측면에서 영어는 ‘주어-서술어-목적어(SVO)’ 어순을 따르고 어순에 따라 문법적 격(case)이 결정되어 어순이 문법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반면, 한국어는 기본적으로 ‘주어-목적어-서술어(SOV)’ 어순을 준수하지만, 활용 어미나 조사와 같은 문법적 기능어의 발달로 어순이 비교적 자유로운 교착어(agglutinative language)에 속한다(Sohn, 2008). 한국어의 교착적 특성으로 인해 조사가 다양하게 발달하였으며 용언의 활용형이 많고 그 의미도 다양하여, 영어에 비해 복잡한 문법형태소의 체계를 갖는다(Nam & Ko, 2001). 또한 영어에서는 두 문장을 연결하기 위해 독립된 어휘나 특수한 문장구조를 필요로 하지만, 한국어에는 연결어미를 사용하여 원인, 이유, 조건 등 여러 가지 의미로 두 문장을 접속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차이를 고려할 때,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은 사용언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언어학적 비유창성은 비유창성이 나타날 수 있는 자발화 샘플을 얻기 위한 과제 유형과 과제 제시 방법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선행연구들은 대화 상황(conversation)보다 이야기(narrative)에서 비유창성이 더 많이 나타난다고 보고하였다(Bedore et al., 2006; Brundage & Rowe, 2018; Byrd, Logan, & Gillam, 2012; Redmond, 2004; Wagner, Nettelbladt, Sahlén, & Nilholm, 2000). 이는 일반적으로 이야기 산출 과제에서 요구되는 구문 구조나 이야기의 논리 구조가, 단순한 의사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대화의 언어적 수준보다 복잡하며 요구가 증가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Leadholm & Miller, 1995).
아동들의 이야기 산출 능력의 측정 방법에는 아동들이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여 산출하게 하는 방법(story generation)과 이야기를 들려준 후 아동에게 기억하여 회상하게 하는 방법(story retelling) 이 있다. 이 두 가지 측정된 방식에 따라 아동들의 이야기 산출 능력이 달라질 수 있다. 아동의 이야기 산출과 회상 능력을 살펴본 선행연구들에 따르면, 산출 과제에서보다 회상 과제에서 발화 길이, 완전한 일화 개수(number of complete episodes), 어휘적 다양도, 구문 복잡성이 모두 높게 나타났다(Westerveld & Gillon, 2010). 발화의 길이와 비유창성의 빈도 간 정적 상관관계를 보고한 선행연구들을 고려하면(Shriberg, 1996; Wagner et al., 2000), 회상 과제는 발화의 길이가 길고 구문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산출하도록 유도하기 때문에, 산출 과제보다 더 많은 비유창성이 나타날 수 있다. 또한 회상 과제 수행 시에는 아동들이 직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회상해서 산출해야 하는 인지적 부하가 증가하기 때문에, 산출 과제와는 다른 양상의 비유창성 빈도와 유형이 나타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에서 설정한 연구문제는 다음과 같다.
1. 이중언어 집단과 단일언어 집단 간 이야기 산출 과제와 회상 과제에서 산출한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과 빈도에 유의한 차이가 있는가?
2. 이중언어 집단에서 이야기를 산출한 언어(한국어, 영어)에 따라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에 유의한 차이가 있는가?
3. 이중언어 집단에서 제2 언어 노출 기간과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 간 유의한 상관관계가 나타나는가?
연구방법
연구대상
본 연구에는 만 6-9세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 19명(남아 12명, 여아 7명), 단일언어 아동 21명(남아 8명, 여아 13명), 총 40명이 참여하였다.
연구 대상자 선정 기준은 다음과 같다.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은 1) 국내 또는 국외에서 출생하여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2) 언어습득기에 영어권 국가에서 최소 1년 이상 생활한 경험이 있으며, 3) 영어를 사용하는 교육 기관에 재학하여 하루 평균 5시간 이상 또래 아동과 상호작용 및 교육프로그램에서 영어를 사용하고, 4) 수용 ·표현 어휘력검사(Receptive & Expressive Vocabulary Test, REVT; Kim, Hong, Kim, Jang, & Lee, 2009)와 Peabody Picture Vocabulary Test-IV (PPVT-IV; Dunn & Dunn, 2007)에서 수용 어휘력 점수가 두 검사도구에서 모두 정상발달 범주(백분위수 10%ile 이상)에 속하고, 5) 수용·표현 어휘력검사(Receptive & Expressive Vocabulary Test, REVT; Kim et al., 2009)와 Expressive One Word Picture Vocabulary Test-4 (EOWPVT-4, Martin & Brownell, 2011)에서 표현 어휘력 점수가 두 검사도구에서 모두 정상발달 범주(백분위수 10%ile 이상)에 속하고, 6) 한국 카우프만 간 편지능검사-2 (Korean Kaufman Brief Intelligence Test-II, K-BIT; Moon, 2020) 결과 동작성 지능 지수가 85 (-1 SD) 이상, 7) 부모 보고형 아동 언어 능력 평가도구(Korean Brief Parent Report, KBPR; Han & Yim, 2018) 결과 아동의 언어 및 발달력 총점이 -1 SD 이상, 8) 시각 및 청각 등의 동반 장애가 없으며, 말·언어 장애 이력이 없다고 보고된 아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본 연구에 참여한 단일언어 아동의 선정 기준은 1) 한국에서 출생하여 가정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며, 2) 영어권 국가에서 생활한 경험이 없으며, 3) 한국어를 사용하는 교육 기관에 재학하고, 4) 수용 ·표현 어휘력검사(Receptive & Expressive Vocabulary Test, REVT; Kim et al., 2009)에서 수용 및 표현 어휘력 점수가 모두 정상발달 범주에 속하고, 5) 한국 카우프만 간편지능검사-2 (Korean Kaufman Brief Intelligence Test-II, K-BIT; Moon, 2020) 결과 동작성 지능 지수가 85 (-1 SD) 이상, 6) 부모 보고형 아동 언어 능력 평가 도구(Korean Brief Parent Report, KBPR; Han & Yim, 2018) 결과 아동의 언어 및 발달력 총점이 -1 SD이상, 7) 시각 및 청각 등의 동반 장애가 없으며, 말·언어 장애 이력이 없다고 보고된 아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본 연구에 참여한 아동의 연령, 비언어성 지능, 한국어 수용 및 표현어휘능력 평균은 Table 1과 같다.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독립표본 t-test를 실시한 결과, 모든 항목에서 집단 간 유의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언어 집단의 영어 노출 연령과 우세언어를 알아보기 위해 부모 언어 사용 및 환경 설문지(Parental Language Environmental Questionnaire, PLEQ; Yim, Baek, Kim, & Han, 2020)를 연구자가 수정 및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그 결과, 본 연구에 참여한 이중언어 집단 19명 중 영어 우세언어 아동은 3명, 한국어 우세언어 아동은 16명이었으며, 영어에 처음 노출된 연령에 따라 3세 이전에 두 언어에 노출된 동시적 이중언어 아동 5명, 3세 이후에 두 언어에 노출된 순차적 이중언어 아동 14명이었다. 이중언어 집단의 제2 언어 노출 기간의 평균은 46.52개월(약 3년 10개월)로 나타났다. 이중언어 집단에 대한 세부정보는 Table 2에 제시하였다.
연구도구 및 절차
연구도구
아동들의 이야기 산출 및 회상 능력을 살펴보기 위해 MAIN(Multilingual Assessment Instrument for Narratives; Gagarina et al., 2012)의 ‘고양이’와 ‘염소’ 이야기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 과제는 이중언어를 구사하는 3-10세 아동의 이야기 산출 및 이해 평가를 위해 개발된 과제로, 총 6장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이야기 간 이야기 구조 및 이야기 길이가 동일하게 구성되었다. 두 이야기는 여섯 가지 이야기문법 요소인 배경, 계기 사건, 내적 반응, 시도,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
한국어 단일언어 아동은 한국어로 된 ‘고양이’ 혹은 ‘염소’ 이야기 과제만을 실시하였으며, ‘고양이’ 이야기를 실시하는 조건과 ‘염소’ 이야기를 실시하는 조건 중 하나에 무선적으로 할당되었다. 단일언어 아동 총 21명 중 11명은 ‘고양이’ 이야기, 10명은 ‘염소’ 이야기를 실시하였으며 실시 조건 간 총 비유창성 비율에 차이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독립표본 t-test를 실시한 결과, 두 조건 간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총 비유창성 비율에 유의한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였다(t19 =.022, p=.982, t19 =-.083, p=.935). 이중언어 아동의 경우, 산출 언어에 따라 과제 시행 순서를 ‘고양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먼저 실시하고 ‘염소’ 이야기를 영어로 실시하는 조건과, ‘염소’이야기를 한국어로 먼저 실시하고 ‘고양이’ 이야기를 영어로 실시하는 조건으로 균형배치(counterbalance)되어 무선적으로 할당되었다. 이중언어 아동 총 19명 중 10명은 ‘고양이’ 이야기를 한국어로 먼저 실시하였고 9명은 ‘염소’ 이야기를 한국어로 먼저 실시하였다. 두 조건 간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총 비유창성 비율에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t19 =.10, p=.921, t19 =1.22, p=.238).
과제에 사용된 그림자극과 이야기 스크립트 예시는 Appendix 1에 제시하였다.
연구절차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과 한국어 단일언어 아동의 언어학적 비유창성 특성을 알아보는 본 연구의 목적에 따라 이중언어 아동 표집을 위하여 한국, 미국, 캐나다, 호주, 싱가폴 육아 커뮤니티에 연구 참여자 모집 공고를 배부하여 연구 대상자를 모집하였다. 참여의사를 밝힌 아동 보호자를 대상으로 연구목적과 내용, 방법을 설명하고 자발적 참여에 대한 서면 동의를 받고 실시하였다.
실험은 화상회의 플랫폼인 Zoom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검사자와 아동 간 1:1로 실시하였다. 실험 실시 이전에 아동의 부모에게 회의 링크를 이메일로 전달하여 예정된 실험 일정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아동과 평가자 간 원활한 평가가 가능하도록 소음이 없는 독립된 실내 공간에서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컴퓨터 조작이 어렵거나 집중하기 어려워하는 아동의 경우, 주양육자가 동석하도록 하였으나, 아동의 응답에 반응하지 않도록 하였다. 아동의 배경정보, 발달력, 언어사용환경에 관한 설문 문항은 온라인 설문으로 배포하여 수집하였다.
모든 대상자들은 한국 카우프만 간편지능검사-2 (Korean Kaufman Brief Intelligence Test-II, K-BIT-II; Moon, 2020), 수용 및 표현 어휘력 검사(Receptive & Expressive Vocabulary Test, REVT; Kim et al., 2009),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를 실시하였다. 검사 소요 시간은 약 60분이었으며 이중언어 아동은 한국어와 영어로 표현 및 수용 어휘력 검사와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를 모두 실시해야 함에 따라, 총 두 번에 걸쳐 평가를 진행하였다. 1차 평가 이후 약 1주일의 간격을 두고 2차로 영어 평가를 진행하였다.
구체적인 연구절차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는 산출 과제 실시 이후 회상 과제 실시 순서로 진행하였다. 먼저, 검사자는 시간 순서대로 나열된 6개의 그림을 보여주고, 아동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산출하게 하였다. 아동이 그림을 살펴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 후 그림의 내용을 최대한 자세하게 말해주기를 지시하였다. 검사자는 아동이 산출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응’, ‘그래’와 같은 중립적인 반응만을 제공하였다. 이야기 산출 검사가 완료된 이후 회상 검사를 실시하였다. 회상 검사는 산출 검사와 동일한 그림 자료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이야기에 해당하는 그림을 하나씩 가리키며 아동에게 스크립트를 검사자가 읽어주었다. 스크립트를 들려준 직후 아동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기억나는 대로 이야기를 다시 말해주기를 요구하였다. 아동이 산출한 이야기는 분석 및 신뢰도 검토를 위하여 모두 녹음 후 전사하여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비언어성 지능 평가를 위해 한국 카우프만 간편지능 검사-2 (KBIT-II; Moon, 2020)의 하위검사인 관계유추를 실시하였다. 검사도구의 그림자극을 화면 공유 기능을 사용하여 아동에게 제시하였고, 검사 도구 지침서에 따라 보기로 제시되는 5개의 그림 중에서 자극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그림의 번호를 선택하여 말하도록 하였다. 또한 수용 어휘 및 표현 어휘 평가를 위해 수용 및 표현 어휘력 검사(REVT; Kim et al., 2009)를 온라인으로 실시하였다. 한국어와 영어 각 검사 도구의 그림자극을 화면 공유 기능을 사용하여 아동에게 제시하였으며 검사 도구 지침서에 따라 표현 어휘 검사의 경우, 연구자가 아동에게 검사 문항을 화면에 제시하고 목표 어휘를 산출하도록 하였다. 수용 어휘 검사의 경우, 그림 자극을 화면에 제시함과 동시에 목표 어휘를 들려준 후 아동에게 네 개의 그림 중 목표 어휘에 해당되는 하나의 그림을 선택하여 구어로 응답하도록 하였다.
자료분석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아동이 산출한 발화를 1급 언어 재활사 자격증을 소지한 언어병리학과 박사과정 연구자 2명이 전사하였다. 언어학적 비유창성 분석은 Bedore 등(2006)과 Navarro-Ruiz와 Rallo-Fabra (2001)의 분류를 참고하여 간투사, 반복, 수정, 휴지 총 4개의 유형으로 분석하였다. 언어학적 비유창성에 대한 자세한 분석 기준은 Table 3에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이중언어 아동의 언어학적 비유창성 특성을 살펴본 선행연구(Ardila et al., 2011; Byrd et al., 2014; Carias & Ingram, 2006; Ratner & Benitez, 1985)를 따라 분석의 단위는 음절이 아닌 어절을 기준으로 하였다. 발화의 양에 따른 비유창성 빈도를 통제하기 위해 비유창성 비율을 계산하였다. 총 비유창성 비율은 총 비유창성 빈도를 비유창성이 나타나지 않은 총 어절 수로 나눈 후 100을 곱하여 산출하였다(총 비유창성 비율=총 비유창성 빈도/총 어절 수×100). 유형별 비유창성 비율은 각 비유창성 유형(간투사, 반복, 수정, 휴지)의 빈도를 비유창성이 나타나지 않은 총 어절 수로 나눈 후 100을 곱하였다(각 비유창성 유형의 비율=유형별 비유창성 빈도/총 어절 수×100).
수집한 자료 중 30%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재검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어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 및 빈도에 대한 평가자 내 전사 신뢰도는 100%, 분석 신뢰도는 97%로 나타났다. 영어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 및 빈도에 대한 평가자 내 전사 신뢰도는 98%, 분석 신뢰도는 95%로 나타났다.
통계분석
자료의 통계적 처리는 IBM SPSS statistics 29.0 (IBM-SPSS Inc., Chicago, IL, USA)을 사용하여 분석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을 살펴보기 위해 집단을 집단 간 변인으로, 과제 유형(산출, 회상)을 집단 내 변인으로 하여 각 비유창성 유형별로 이원혼합 분산분석(two-way mixed ANOVA)을 실시하였다. 또한 이중언어 집단을 대상으로 산출한 언어(한국어, 영어)에 따른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에 차이가 있는지 검토하기 위해 대응표본 ttest를 실시하였다. 이중언어 집단 내 제2 언어(영어)에 노출된 기간과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 간에 유의한 상관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Pearson 상관분석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집단 간 이야기 과제 유형에 따른 언어학적 비유창성 차이
집단 간 과제 유형(산출, 회상)에 따른 각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별 비유창성 비율에 대한 기술통계는 Table 4에 제시하였다. 이중언어 집단이 단일언어 집단보다 산출 과제, 회상 과제 모두에서 언어학적 비유창성의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이야기 산출 과제에서 이중언어 집단의 비유창성 유형은 반복, 수정, 간투사, 휴지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단일언어 집단의 비유창성 유형은 수정, 반복, 간투사, 휴지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야기 회상 과제에서 이중언어 집단의 비유창성 유형은 반복, 간투사, 수정, 휴지 순으로 높게 나타났으며 단일언어 집단의 경우 수정, 반복, 간투사, 휴지 순으로 나타났다.
이야기 과제 유형 및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에 따른 이중언어 집단과 단일언어 집단의 총 비유창성 비율을 비교한 결과는 Figure 1과 같다. 집단 간 주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F(1,38)=10.89, p<.01). 즉, 이중언어 집단(M=20.66, SE=1.87)이 단일언어 집단(M=12.14, SE=1.77)에 비해 유의하게 높은 총 비유창성 비율을 보였다. 집단 내 요인 중 이야기 과제 유형의 주효과는 유의하지 않았다(F(1,38)=.315, p>.05). 즉, 이야기 산출 과제와 이야기 회상 과제 간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집단과 이야기 과제 유형의 이차상호작용이 유의하지 않았다(F(1,38)=2.834, p>.05).
이야기 산출 과제 유형에 따른 집단 간 특정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에 차이가 있는가를 분석하였다. 먼저, 간투사 비율에 유의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원혼합 분산분석을 실시한 결과, 집단의 주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F(1,38)=4.17, p<.05). 즉, 이중언어 집단(M=5.56, SE=1.11)이 단일언어 집단(M=2.42, SE=1.05)에 비해 유의하게 높은 간투사 사용을 보였다. 과제 유형의 주효과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으며(F(1,38) =2.94, p>.05), 이는 산출 과제에서의 간투사 비율(M=3.40, SE=.79)과 회상 과제에서의 간투사 비율(M=4.57, SE=.88) 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집단과 과제 유형의 이차상호작용이 유의하지 않았다(F(1,38)=.94, p>.05).
반복 비율에서 집단 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났으며(F(1,38)=6.83 p<.05), 이중언어 집단(M=7.23, SE=1.03)이 단일언어 집단(M=3.48, SE=.98)에 비해 반복의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과제 유형에 따른 반복 비율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으며(F(1,38)=.002, p>.05) 집단과 과제 유형의 이차상호작용이 유의하지 않았다(F(1,38)=.283, p>.05).
다음으로 수정 비율의 경우, 집단의 주효과가 유의하지 않았다(F(1,38)=1.61, p>.05). 과제 유형의 주효과 또한 유의하지 않았으며(F(1,38)=.76, p>.05), 집단 및 과제 유형의 이차상호작용이 유의하지 않았다(F(1,38)=1.741, p>.05). 이는 수정 비율은 집단 간 유의한 차이가 없었으며, 과제 유형 간에도 유의한 차이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휴지 비율에서 집단 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F(1,38)=.381, p>.05). 산출 및 회상 과제 유형에 따라 휴지 비율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다(F(1,38)=.424, p>.05). 집단과 과제 유형의 이차상호작용 효과는 통계적으로 유의하였다(F(1,38)=6.217, p<.05)(Figure 2). 유의한 이차상호작용에 대한 사후검정으로 과제 유형에 따라 집단 간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일원배치 분산 분석을 실시한 결과, 산출 과제에서는 이중언어 집단과 단일언어 집단 간 휴지 비율의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으나(F(1,38)=2.945, p>.05), 회상 과제에서 집단 간 차이가 유의하였다(F(1,38)=5.520, p<.05). 즉, 유의한 이차상호작용은 이야기 산출 과제보다 회상 과제에서 단일언어 집단의 휴지 비율은 증가하고, 이중언어 집단의 휴지 비율은 감소하는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Figure 2).
사용 언어에 따른 언어학적 비유창성 차이
이중언어 집단을 대상으로 산출한 언어(한국어 vs. 영어)에 따라 총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 유형별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에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았다(Table 5). 그 결과, 산출 과제 수행 시 영어보다 한국어에서 총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이 유의하게 높았다(t18 =2.516, p<.05). 회상 과제에서도 영어보다 한국어에서 총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이 유의하게 높게 나타났다(t18 =2.360, p<.05).
이야기 산출 과제 수행 시 사용 언어에 따른 비유창성 유형별 비율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 ‘수정’에서 한국어와 영어 간 차이가 유의하게 나타났다(t18 =3.413, p<.01). 한국어에서 수정의 비율이 영어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 외 간투사(p>.05), 반복(p>.05), 휴지(p>.05)에서 사용 언어에 따른 차이가 유의하지 않았다.
이야기 회상 과제에서는 한국어와 영어 간 비유창성 산출 비율의 차이가 간투사(t18 =2.30, p<.05), 수정(t18 =2.847, p<.05), 휴지(t18 =-3.536, p<.01)에서 유의하게 나타났다. 간투사 비율이 영어보다 한국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으며, 수정의 비율이 영어보다 한국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휴지의 비율은 한국어보다 영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Figure 3).
제2 언어 노출 기간과 언어학적 비유창성과의 관련성
이중언어 집단에서 영어에 노출된 기간과 영어로 산출 과제 수행 시 나타난 총 비유창성 비율 간 유의한 부적 상관관계가 나타났다(r=-.469, p<.05) (Table 6). 즉, 영어에 노출된 기간이 길수록 영어로 수행한 이야기 산출과제에서의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이 낮게 나타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의 및 결론
본 연구는 6-9세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집단과 단일언어 집단을 대상으로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나타나는 언어학적 비유창성 빈도 및 유형을 비교 검토하고자 하였다. 또한 이중언어 집단에서 한국어와 영어 간 비유창성의 차이를 살피고, 이중언어 집단의 비유창성의 비율과 제2 언어 노출기간 간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먼저, 이중언어 집단과 단일언어 집단의 과제 유형에 따른 언어학적 비유창성 차이를 살펴본 결과, 이중언어 집단이 단일언어 집단보다 유의하게 높은 언어학적 비유창성 총 빈도를 보였다. 이러한 결과는 이중언어 아동이 단일언어 아동보다 더 높은 언어학적 비유창성을 보인다는 선행연구의 결과와 일치한다(Bedore et al., 2006; Brundage & Rowe, 2018; Byrd et al., 2015; Eggers et al., 2020; Lofranco et al., 2006; Rojas & Irani, 2020).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별로 집단 간 차이를 살펴본 결과, 이중언어 아동이 단일언어 아동보다 더 높은 빈도의 간투사와 반복을 보였다. 간투사는 언어를 계획하는 단계에서 기억 및 인출을 돕기 위해 외현적으로 시간을 벌기 위한 책략으로 볼 수 있으며(Clark & Tree, 2002; Thordardottir & Weismer, 2002), 반복은 음운, 의미, 구문 등의 계획 및 인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호함(ambiguity)을 의미하며, 자신의 발화를 모니터링 하는 과정 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Fraundorf et al., 2013; Thordardottir & Weismer, 2002), 따라서 이러한 본 연구결과는 이중언어 아동이 단일언어 아동에 비해 발화를 계획하고 인출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시사한다. 즉, 이중언어 아동이 언어 계획, 조직화, 어휘 인출 등의 전반적인 언어처리 과정에서 겪는 ‘언어적 불확실성’이 발화 산출에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야기 산출 과제 유형에 따른 총 비유창성 비율의 차이를 살펴본 결과, 과제 유형 간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야기를 스스로 구성하여 자발적으로 산출하는 산출 과제에서보다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여 다시 말하는 회상 과제에서 발화 길이, 완전한 일화 개수(number of complete episodes), 어휘적 다양도, 구문 복잡성이 높게 나타난다는 선행연구(Gillam & Pearson, 2004; Westerveld & Gillon, 2010)의 결과를 고려할 때, 발화의 길이가 더 길고 구문적으로 복잡한 문장을 산출하게 되는 회상 과제에서 아동들의 비유창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였으나, 본 연구에서는 이야기 과제 유형(산출 vs. 회상) 간 비유창성의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본 연구의 대상은 말더듬이 없는 일반 아동들로서, 동일한 이야기 문법 구조의 담화를 회상하여 재산출하는 과제에서 추가된 세부 정보와 늘어난 담화의 길이가 이들이 유창한 말을 계획하고 산출하는 데 유의하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수 있다.
한편, 비유창성 유형 중 ‘휴지’ 비율에서 집단과 과제 유형의 유의한 이차상호작용이 나타났다. 단일언어 아동은 산출 과제보다 회상 과제에서 휴지 비율이 높게 나타난 반면, 이중언어 아동은 회상 과제보다 산출 과제에서 휴지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휴지는 언어 계획, 문장 구성, 어휘 인출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나타나는 비유창성 유형으로 볼 수 있는데(Fraundorf et al., 2013), 이를 통해 이중언어 아동은 아무런 단서 없이 스스로 짜임새 있는 이야기를 계획하고 구성하여 이야기를 산출하는 것이 단일언어 아동에 비해 더 어려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중언어 아동은 회상 과제 시 연구자가 제시한 이야기에서 적절한 어휘, 구문의 언어 형식으로 구성하는 데 도움을 받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음으로 이중언어 아동 집단 내에서 아동이 산출한 언어(한국어 vs. 영어)에 따른 총 언어학적 비유창성을 비교한 결과, 산출과 제와 회상 과제 모두에서 영어보다 한국어에서 더 높은 빈도의 언어학적 비유창성이 나타났다. 유형별 비유창성을 살펴본 결과, 산출에서 ‘수정’의 비율이 한국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으며, 회상에서 ‘간투사’, ‘수정’의 비율이 한국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반면, 휴지의 비율은 한국어보다 영어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구사하는 언어의 특성에 따른 비유창성의 차이를 보고한 선행연구들과 일치하는 결과이다(Ardila et al., 2011; Bedore et al., 2006; Jankelowitz & Bortz, 1996; Lim et al., 2008; Nwokah, 1988). 한국어는 문장 성분의 순서를 비교적 자유롭게 바꿀 수 있으며, 조사, 어미, 접미사 등의 문법형태소가 영어에 비해 매우 발달하였다. 또한 용언의 활용어미가 다양하고, 자유롭게 활용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Sohn, 2008). 이러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적 차이로 인해, 이중언어 아동들이 한국어로 이야기를 산출할 때 영어에서보다 자신의 발화를 더 많이 수정하고, 간투사도 더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본 연구 대상자의 대부분이 한국어 우세 아동이며 한국어와 영어 모두 정상발달 범주에 속하는 언어 능력을 보유한 일반 아동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구사하는 언어의 언어적 특징이 비유창성에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유창성 평가 시 두 언어의 차이점을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후속연구에서는 더 많은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영어의 언어학적 비유창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여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의 정상적 비유창성에 대한 기준이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영어 노출 기간과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 간 부적 상관관계가 나타났으며, 이는 영어에 노출된 기간이 길수록 영어로 수행한 이야기 산출 과제에서의 언어학적 비유창성 비율이 낮았음을 의미한다. 즉, 영어에 노출된 기간이 길다는 것은 영어의 능숙도가 높다고 볼 수 있으며,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로 이야기를 구성하여 산출 시 언어적 부담감이 적기 때문에 비유창성이 적게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본 연구의 결과는 능숙하게 구사하는 언어에서 비유창성이 적게 나타난다는 선행연구의 결과를 지지한다(Ardila et al., 2011; Chakraborty et al., 2017; Eggers et al., 2020; Jankelowitz & Bortz, 1996; Lim et al., 2008). 이중언어 아동의 제2 언어 노출 시기, 우세언어, 각 언어의 능숙도가 비유창성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였으며, 따라서 임상 현장에서 이중언어 아동의 유창성 평가 및 중재 시 이러한 요인들에 대해 고려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이야기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총 비유창성 빈도 및 유형별 빈도를 분석하여 단일언어 집단과 비교한 결과, 이중언어 집단이 산출 및 회상 과제에서 모두 더 높은 빈도의 비유창성을 보이는 것을 확인하였다. 언어학적 비유창성 유형별로 집단 간 차이가 나타났으며, 이중언어 집단이 단일언어 집단보다 더 높은 빈도의 간투사와 반복을 보였다. 또한 이중언어 집단 내에서 영어보다 한국어로 산출한 발화에서 유의하게 높은 언어학적 비유창성이 나타나, 두 언어의 언어적 차이가 비유창성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제2 언어의 노출 기간과 언어학적 비유창성의 부적 상관관계가 나타나, 이중언어 아동의 유창성 평가 및 치료를 할 경우, 언어 노출 시기, 언어의 능숙도, 언어의 구문적 차이를 세밀히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본 연구의 제한점 및 후속연구에 대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 연구는 6-9세 한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 19명으로, 모두 언어적 어려움이 없는 일반 아동을 대상으로 하였다. 후속연구에서는 이중언어 대상자를 충분히 확보하여 비유창성의 특성을 살펴볼 것을 제언한다. 또한 일반 아동뿐만 아니라 말을 더듬는 이중언어 아동을 추가적으로 대상으로 하여 비유창성 빈도 및 유형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둘째, 우세언어와 제2 언어 노출 시기가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에 미치는 영향을 추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에 참여한 대상자의 대부분은 한국어 우세언어 아동이고 순차적 이중언어 아동이기 때문에, 향후 연구에서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된 우세언어, 제2 언어 노출 시기에 따라 집단을 구분할 수 있도록 집단별 충분한 대상자 수를 확보하여, 이러한 요인들과 비유창성의 관계를 살펴보면 임상적으로 좀 더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어와 언어적 특징이 유사한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아동의 비유창성을 살펴보는 실험 연구가 추가적으로 실시될 필요가 있다. 본 연구결과, 영어에 비해 복잡한 문법형태소의 체계를 갖는 한국어로 이야기를 산출할 때에 더 많은 비유창성이 나타났고, 특히 간투사와 수정에서의 차이가 나타났다. 스페인어-영어 이중언어 아동, 중국어-영어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선행 연구들에서도 구사하는 언어에 따라 비유창성의 빈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고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어와 한국어와 구문적 특성이 비슷한 언어, 혹은 한국어와 구문적 특성이 다른 언어를 구사하는 이중언어 아동을 대상으로 언어적 특성에 따른 비유창성 양상의 차이를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